요즘의 생각 as it goes


1. 스마트폰 구입 이후부터일까. 책에 손이 덜 가게 된 것은. 아, 내가 이렇게까지 아이폰을 잘 갖고 놀 줄은 몰랐음.

2. 추리소설팬을 가장한 SF팬인지, SF팬을 가장한 추리소설팬인지 모르겠네, 요즘엔. 10대엔 추리소설, 20대엔 SF/판타지, 30대엔 음...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건 성장소설.(이라고 우겨본다.)

3. 사실은 나도 그때 상처받았다고, 당신들만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이야기할 수도 없다.(그들까지 지치게 할 순 없지.) 거듭하여 지난날을 되새기고 돌아보고 또 상처받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까닭은, 당사자들 앞에서 내 상처를 말하지 못했음 때문일까. 이 기억이 바래지려면 같은 기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4. 슬슬 올해의 여행 준비 시작.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호텔팩 발견. 다음 주 중에 예약 알아봐야겠다.

5. 언젠가 다시 꼭 나와주길 바랐던 <영원의 아이>가 드디어 재출간된다. 사실 굉장히 어둡고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독자들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네. 이 세상이 상처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 그속에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잠시잠깐 스쳐가는 누군가의 온기, 세상의 모든 당신과 맞잡은 두 손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온 텐도 아라타. 그가 이번 작품으로 더 널리 알려지면 좋을텐데.

6. 요새는 NCIS 보는 낙으로 산다. 3시즌까지 마치고 4시즌 가는 중. 아, 토니가 너무 좋아. ㅠㅠ

7. 조금 늦었지만 추리소설 10문 10답 올렸다. 2번 질문은 표현이 너무 살벌한가.;;('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했을 때'로 바꾸어야 하나.)
    
  10문 10답 보기 >> http://blog.aladdin.co.kr/editors/3923185


올리브 키터리지 read-ing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상반기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
생각가는 대로 접거나 메모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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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이여, 널 놓지 않을게.

쉬지 않는 바다를 상상해본적 있는가.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결국, 끝내는 사랑만이 남는다.
남의 불행을 위안삼는, 낙심한 인생살이.
음식이 주는 위안.
큰 기쁨, 작은 기쁨.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
친절한 점원,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여종업원, 정말 어려운게 삶이다.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 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은 어떤 길을 따라, 그 길을 타고 가는 것.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저 만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눈물을 억눌러 참는 듯한 끈질긴 고통.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
삶을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말,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양지바른 세상의 거대한 외로움.
두려움.
삶은 언제나 가져가기만 한다.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2010년 4월 베스트셀러 단상 책이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

예전에 모 작가와 인터뷰할 때 나온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작가 왈 "전 국민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국가에서 금서조치를 취하면 된다"라 말했었다. 금지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인간 심리...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얼마 전 법정 스님 도서 품절 사태만 보아도 위 말은 어느 정도 입증 가능하다. 목숨과 함께 자신의 글까지 거두어 가겠다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관련 도서들이 곧 절판될 거라 빵빵 때려댄 방송과 신문기사 덕에, <무소유> 외 법정스님의 도서 전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하는 기현상을 보인 것. 심지어 출간된지 십수년 된 불교경전까지 순위에 진입, 그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묻지 마 사재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법정 스님 도서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탓에 피해를 본 것은 엉뚱하게도 '열린책들'이었는데, 마침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던 베르베르의 신작 <파라다이스>의 순위가 쭉 미끄러지고 만 것이다. (이제 더 말하기 입아프지만) 프랑스보다 우리 나라에서 더 사랑받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답게 거침없는 판매 상승세를 보이다 '법정 스님의 유언'이라는 강력한 벽에 부딪쳐 기세가 꺾이고 만 것. 종합 베스트셀러 1위라는 위치가 갖는 영향력과 상징성은 차치하더라도, 1년에 1번 서점에 들려 책을 살까말까 한 일반 독자들이 법정 스님의 도서를 구매해 버렸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신간을 펴낸 출판사 모두에게 기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법정 스님의 도서 판매추이가 조금씩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이번엔 노무현이다.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수필가 장영희 등의 사망 소식과 함께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던 현상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저자가 산 저자를 압도하는 형국이랄까. 유명 저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저서를 검색해 수급상황을 체크하고 가격을 점검해야 하는 직업적 비애(?)에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 다만 궁금한 것은, 강렬한 외부적 자극-이를테면 죽음-이 없이 책 본여의 힘만으로 전 국민적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것은 이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절판과 죽음, 마이너스적이고 출구없는 극단의 자극이 2010년 상반기 출판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세상은 오히려 더 단순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취향, 하나의 목소리가 다른 모든 것을 가리고 새로운 것들의 탄생을 방해한다. 다양한 시각, 낮은 목소리에 대한 존중은 이제 책시장에서마저 환상에 불과하다. 2대8, 아니 1대9가 지배하는 출판계가 머지 않아 보인다.(아니, 사실 벌써 와있을지도.) 이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막막하고 쓸쓸하다.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독자들이 될 수 있으므로.


"그러나 내가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read-ing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김인숙이 '소현'을 썼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이다. 소현세자가 아무리 조선을 사랑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중자애하여도, 그가 조선에 돌아온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욕망뿐이다." 이미 정해진 역사가 압도적 서사로 작용하는 이 소설은, 따라서 장면과 인물에 집중한다.

적의 땅에 끌려가 9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적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한 세자. 그는 그저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살아남기 위해 말을 고르고, 주변인에 대한 애정도 덮어둔 채 "다만 조선의 앞날을 생각한다." 세자뿐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구왕 도르곤도, 조선의 노비였다 청의 역관이 된 만상 역시도 오직 살아남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긴 자도 진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결국 모두 죽는다. 살기 위해 생각하고, 살기 위해 남을 해하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든 사람들을 시간은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세월이 흔히 강물이나 바람에 비유되는 것은 그것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 김인숙은 그 세월의 한 자락, 역사의 한 장면을 잡아내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 환멸과 두려움을 그려낸 것이다.

하여 작가가 빚어낸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모두 고독하다.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앞에 인간은 지워지고 역할과 목숨만 남아, 이야기는 그저 쓸쓸하다. 수년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돌아눕는 아비-아니 임금의 모습처럼, 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과 미처 쓰지 못한 세상의 말들이 소설 속에 가득하여 읽고 나면 다만 가슴이 먹먹하다.

정밀한 문장과 세심한 심리묘사, 말로 붙잡기 어려운 아득한 슬픔과 고독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낸 작가의 언어가 돋보인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위로할 수도 대신 변명할 수도 없으므로, 그의 삶과 죽음을 있는 힘을 다해 이해할 뿐"이었다 고백한 작가의 말처럼, 홀로 운명과 마주했던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에 접근함에 있어 작가의 정성과 노력에 부족함이 없다. '소현'을 다룬 여러 역사소설 중, 근래 보기 드물게 잘 씌여진 수작.


2009년 5월 23일 as it goes

나는 그저,
그 벼랑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질 때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자꾸 떠올라 순간순간 황망하다.
사람을 그렇게 몰아갈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한다니 무섭고 섬뜩하다.

이 와중에 쏘쿨한 척-pc한 언사를 내뱉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언짢다.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이틀, 사흘, 그 정도의 시간도 참아주지 못하겠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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